01
처음 봤을 때, 상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민준소개받기 전에 사진을 먼저 봤는데, 실물이 훨씬 나았습니다. 생각보다 키도 크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왔어요. 그런데 처음 30분 동안 거의 저만 떠들었습니다. 저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너무 긴장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말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수다쟁이입니다.
서연문을 열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인사하더니, 앉아서는 제 컵 밑에 냅킨부터 깔아 줬어요. 저는 준비해 간 질문을 하나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고요.
민준이는 제가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대요. 조용했던 건 맞는데, 속으로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엄청 바빴어요. 집에 와서는 친구한테 한 시간 동안 그날 얘기를 했어요. 정작 만나고 온 사람한테는 말을 못 하고요.
02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 순간은?
민준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가 왔어요.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늘 뭐 했냐, 밥은 먹었냐 하면서 계속 전화를 안 끊더라고요. 저도 괜히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가서 한참 통화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통화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좋아하고 있었는데,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연그 전화, 제가 먼저 걸었어요. 할 말을 메모장에 세 개 적어 뒀는데 십 분 만에 다 써 버렸거든요. 끊기는 싫어서 저녁 뭐 먹었냐고 물었더니 민준이가 편의점 과자 얘기를 시작했어요.
한참 뒤에 계산하는 소리가 나길래 아직 밖이냐고 했더니 아까부터 집 앞이었대요. 집에 들어가서 통화해도 되는데 왜 그러고 있었을까요. 저도 방에서 할 일 다 미뤄 놓고 묻는 말이었어요.
03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민준같이 마트에 갔을 때였어요. 저는 과자 코너에서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옆에서 휴지랑 세제를 고르고 있더라고요. 장을 보고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해 먹었는데 그냥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이런 주말을 앞으로도 계속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연민준이가 과자를 세 봉지나 넣어서 두 봉지로 줄인 날이네요. 저는 세제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결혼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좀 웃겨요.
저는 밥 먹고 나서요. 다음 날 도시락을 싸는 동안 민준이가 설거지를 하고, 갈 때 음식물 쓰레기도 들고 나갔어요. 다음 주에도 같이 밥 먹으면 좋겠다 싶었죠. 과자는 결국 그날 두 봉지 다 먹었어요. 하나 빼길 잘했어요.
04
프러포즈, 그날은 어땠나요?
민준사실 프러포즈를 할 생각은 있었는데 날짜를 못 정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여행 간 김에 하자 싶어서 반지를 챙겨 갔습니다. 문제는 반지를 캐리어에 넣어놨다는 거예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상대가 짐 정리를 시작해서 급하게 화장실로 피신했습니다. 결국 저녁 먹고 숙소에서 반지를 줬어요. 멋진 장소도, 꽃도 없었지만 좋아해 줘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꽃은 아직도 가끔 얘기합니다.
서연강릉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못 만지게 하더라고요. 충전기만 꺼내겠다는데 자기가 찾겠대요. 평소엔 어디 넣었는지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이요. 저녁 내내 주머니를 만지는 것도 봤어요.
그런데 다 눈치채고도 상자가 열리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저는 고맙다고 했고, 민준이는 반지가 맞는지부터 물었어요. 사진은 둘 다 손을 떨어서 흔들렸고요. 꽃 얘기는 진정하고 나서 했어요. 그건 별도로 물어볼 수 있잖아요.
05
연애 초반,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민준두 번째 데이트 때 영화를 봤는데 제가 중간에 잠들었습니다. 하필 상대가 엄청 보고 싶어 했던 영화였어요. 끝나고 어땠냐고 묻길래 재미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장면이 좋았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때 들켰어요. 아직도 영화 보러 갈 때마다 오늘은 잘 거냐고 물어봅니다. 요즘은 안 잡니다. 가끔 졸 뿐입니다.
서연옆을 봤더니 아주 잘 자고 있었어요. 전날 늦게까지 일했다길래 그냥 뒀는데, 제가 웃으면 눈을 뜨고 뒤늦게 따라 웃더라고요. 무슨 장면인지도 모르면서요.
끝나고 어떤 장면이 좋았냐고 일부러 물어봤어요. 처음 장면만 길게 설명하길래 더는 안 물었죠. 나중에 집에서 같이 다시 봤는데 그때는 끝까지 깨어 있었어요. 이번에는 영화보다 민준이 눈을 더 자주 확인한 것 같아요.
06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상대의 습관은?
민준이 사람은 식당에 가면 꼭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어차피 돈가스 먹을 거면서요. 처음엔 왜 저렇게 오래 고르나 싶었는데, 이제는 저도 옆에서 신메뉴가 나왔는지 같이 확인합니다. 결국 둘 다 늘 먹던 걸 시켜요. 메뉴 고르는 데 10분, 주문하는 데 10초 걸립니다.
서연식당에 앉으면 테이블부터 눌러 봐요. 흔들리면 냅킨을 접어서 다리 밑에 넣고요. 처음에는 제가 메뉴 고르는 동안 심심해서 그러는 줄 알았어요.
이제는 저도 컵을 내려놓으면서 한번 눌러 봐요. 덜컹거리면 말없이 냅킨을 건네고 다시 메뉴판을 읽죠. 민준이는 제가 고르는 동안 테이블 수리까지 끝낼 수 있대요. 빨리 고르라는 말을 꼭 저렇게 해요.
07
상대가 유난히 멋있어 보였던 순간은?
민준서연이가 편집한 책 행사에 갔을 때요. 시작 직전에 마이크가 안 됐습니다. 저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서연이는 의자를 당겨 작가님 옆에 앉더니 그냥 진행하더군요. 뒤에도 잘 들리는지 중간중간 확인하고요.
집에서 회사 얘기할 때랑 좀 달랐습니다. 끝나고 점심을 못 먹었다길래 김밥을 사다 줬어요. 행사 감상은 먹고 나서 말했습니다.
서연같이 책장을 조립하던 날이요. 나사를 크기별로 나눠 놓고 시작하더니, 판자를 잘못 끼워도 조용히 다시 풀더라고요. 저는 이미 설명서가 틀린 거 아니냐고 하고 있었어요.
다 만든 뒤에 흔들리는지까지 확인하는 게 꽤 멋있어서 칭찬했어요. 그제야 자기도 처음 해 본 거래요. 미리 알았으면 제가 옆에서 두 배로 떠들었을 텐데, 말 안 하길 잘했죠. 책장은 아직 잘 서 있어요.
08
상대에게 고마웠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민준이직 면접 전에 서연이 앞에서 발표 연습을 했습니다. 앱 기능을 한참 설명했는데, 다 듣고는 그래서 쓰는 사람한테 뭐가 좋으냐고 묻더군요. 그걸 빼먹었습니다.
자료를 고치고 두 번 더 했어요. 같은 부분이 또 헷갈린다고 해서 거기도 고쳤고요. 그냥 잘했다고 해 줬으면 그대로 면접에 갔을 겁니다. 끝나고 저녁을 샀는데, 발표보다 메뉴 고르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서연마감 때문에 주말 약속을 취소했는데 답장이 딱 ‘괜찮아’였어요. 조금 서운해하려던 참에 죽이랑 귤을 들고 왔더라고요. 냉장고가 비었을 것 같았대요. 맞았어요.
같이 십 분쯤 먹고는 언제 끝나냐고 묻지도 않고 갔어요. 책상에 돌아왔다가 보니 컵도 씻어 놨고요. 제가 그날 제일 길게 한 말은 회사 얘기가 아니라 귤 몇 개만 더 까 달라는 거였어요.
09
함께 여행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상대의 모습은?
민준첫 바다 여행에서 버스를 반대편 정류장에서 기다렸습니다. 저는 지도 화살표가 이상하다고 휴대폰을 돌리고 있었고요. 서연이는 바다랑 정류장 이름을 보더니 길을 찾았습니다. 휴대폰은 정상이었습니다.
메뉴 고를 때는 오래 걸리는데 길 찾을 때는 빠르더군요. 그 뒤로 예약은 제가, 이동은 서연이가 맡습니다. 저는 버스가 오면 가방부터 듭니다.
서연첫 바다 여행에 수건을 세 장이나 챙겼길래 얼마나 씻으려고 그러냐고 놀렸어요. 그런데 발에 묻은 모래 털고 젖은 가방 닦고 나니까 다 썼어요.
비닐봉지에 집게까지 나오더라고요. 저는 옷은 열심히 골랐는데 그런 건 하나도 안 챙겼거든요. 숙소에서 민준이가 제 운동화를 말리는 동안 저는 다음 날 갈 길을 찾았어요. 수건 얘기로 더 놀리지는 못했죠.
10
상대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은?
민준‘내가 이 얘기 했었나?’요. 했다고 하면 ‘근데 그 뒤가 있어’ 하고 이어집니다. 제가 앞부분을 더 잘 기억할 때도 있어서 중간부터 말해 달라고 해요.
친구 이사부터 회사 근처 빵집 휴무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듣다 보니 저도 궁금해져서 그 편집자님은 어떻게 됐냐고 먼저 물은 적이 있어요. 서연이가 아주 좋아하더군요. 그날 얘기는 길었습니다.
서연‘일단 밥부터 먹자.’ 제가 회사 얘기를 해도, 둘이 뭘 정하다 막혀도 이 말이 나와요. 처음에는 제 얘기를 그만 듣고 싶은 줄 알았는데 본인이 배고픈 경우도 많더라고요.
요즘은 저도 써요. 청첩장 문구를 한 시간째 고르다가 동시에 밥 먹을까 한 적도 있어요. 밥 먹고 나서 다시 보니 둘 다 처음 골랐던 게 제일 낫대요. 그 한 시간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11
함께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하루가 있다면?
민준눈 많이 오던 토요일이요. 전시를 보러 가려는데 버스가 늦어서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철물점에서 눈삽을 사고 서연이 집 앞 눈을 치웠어요. 전시 대신 삽질을 했습니다.
서연이는 옆에서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제 신발보다 작았습니다. 끝나고 분식집에서 어묵 국물을 먹었어요. 무슨 전시였는지는 잊었고, 삽은 아직 현관에 있습니다. 다음에 눈 오면 또 써야죠.
서연전시 못 가서 아쉬웠는데, 민준이가 철물점에서 눈삽 두 개를 놓고 비교하는 걸 보니까 웃음이 났어요. 저렇게까지 골라야 하나 싶었죠. 저는 옆에서 작년에도 눈 많이 왔다는 얘기나 했고요.
눈사람은 작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손이 시려서 중간에 그만둔 거예요. 민준이는 자꾸 완성한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어묵 먹고 나오면서 남아 있나 보러 갔어요. 만들다 말았어도 없어지면 섭섭할 것 같아서요.
12
상대가 나보다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민준길 찾기랑 사람 기억하기요. 한 번 간 식당 골목도 기억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압니다. 저는 지도에 저장해 놓고도 여기가 어디였는지 다시 찾아봅니다.
제 회사 동료를 우연히 만났는데 서연이가 이사 잘했냐고 먼저 묻더군요. 저는 이사 간다는 걸 잊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서연이한테 들었어요. 제 동료인데요.
서연설거지요. 저는 다 했다고 하는데 민준이는 냄비 손잡이 안쪽을 한 번 더 닦고, 싱크대 물기를 닦고, 행주를 널어요. 거기까지 해야 끝이래요.
고장 난 물건도 일단 한번 봐요. 전기 주전자가 안 켜져서 저는 새것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멀티탭 버튼을 누르니까 되더라고요. 좀 민망해서 마음에 드는 주전자는 일단 저장만 했어요. 지금 것도 잘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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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민준소파 고르러 간 날이요. 매장에 있는 건 거의 다 앉아 봤습니다. 서연이는 앉는 느낌을 보고, 저는 폭을 쟀어요. 마음에 들어도 집에 못 넣으면 소용없으니까요.
둘 다 좋다고 한 소파가 있었는데 너무 깊어서 일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둘이 한참 버둥거렸어요. 직원분이 보고 계셨고요. 결국 조금 단단한 걸 샀습니다. 지금 건 혼자서도 잘 일어납니다.
서연소파 보러 갔는데 가방에서 줄자가 나오더라고요. 거기까진 예상했어요. 그런데 현관이랑 엘리베이터 치수도 적어 왔대요. 저는 마음에 드는 색깔 사진 세 장 가져갔고요.
둘 다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가 못 일어나서 웃었어요. 저는 웃느라 더 못 일어났고요. 결국 고른 건 좀 평범한 소파예요. 둘이 앉아도 팔꿈치가 안 부딪히고, 일어날 때 누구 손을 안 잡아도 돼요.
14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나요?
민준장난감을 받으면 어떻게 움직이는지부터 봤습니다. 나사를 풀고 다시 못 끼운 자동차가 꽤 있었어요. 고장 냈다고 하면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고요.
학교에서는 발표보다 자나 테이프 챙기는 쪽이었습니다. 지금도 여행 갈 때 작은 도구를 넣습니다. 서연이는 제가 나사를 잃어버리던 얘기를 좋아해요. 요즘은 풀면 한곳에 모아 둡니다.
서연공책을 접어서 책을 만들었어요. 내용은 별로 없는데 표지랑 목차부터 만들었죠. 동네 친구들을 등장시켰다가 왜 자기 대사는 이것밖에 없냐는 항의도 받았어요.
낯선 어른 앞에서는 조용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놀이 규칙을 길게 설명했어요. 지금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말이 잘 안 나와요. 민준이는 안 믿는데, 본인도 첫날에는 제가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잖아요.
15
우리 둘만 아는 농담이나 유행어가 있나요?
민준‘일단 저장.’ 바로 못 정할 때 하는 말입니다. 여행에서 머그컵을 한참 보던 서연이가 사진만 찍고 그렇게 말했어요.
요즘은 식당도 가 보고 싶은 동네도 저장합니다. 제 농담에 안 웃으면 이것도 저장한 거냐고 물어봅니다. 대답은 잘 안 해 줘요. 저는 나중에 한 번 더 해 봅니다.
서연‘일단 저장’이요. 민준이는 우리가 신중해서 생긴 말처럼 설명하는데, 처음엔 컵이 무거워서 안 산 거예요.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거든요.
나중에 사러 갔더니 가게가 닫혀 있었어요. 그 뒤로는 놓친 것에도 그 말을 써요. 민준이는 자기 농담도 저장해 달라는데, 안 웃었던 농담을 나중에 또 해요. 그건 제가 잊어서 안 웃은 게 아니거든요.
16
상대의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는 것은?
민준서연이 가족을 처음 뵙기 전에 인사말을 연습했습니다. 앉자마자 길 안 막혔냐고 물어보셔서 준비한 순서가 바로 틀어졌어요. 물만 빨리 마셨습니다.
서연이 어릴 때 얘기가 나오면서 좀 편해졌어요. 본인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저는 더 듣고 싶었습니다. 갈 때 과일도 많이 챙겨 주셨어요. 인사는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는데 과일은 잘 들고 왔습니다.
서연민준이 가족을 처음 뵐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걱정했어요. 그런데 어릴 때 장난감을 분해하던 얘기가 나와서 물어볼 게 많아졌죠. 민준이한테 들은 것보다 못 고친 물건이 많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봐 주시고 접시도 가까이 옮겨 주셔서 잘 먹었어요. 다음에는 편한 옷 입고 오라고 하실 때 좀 안심됐고요. 집에 오는 길에는 저만 계속 얘기했어요. 민준이는 자기 얘기를 너무 많이 들려줬다고 하더라고요.
17
상대의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요?
민준서연이 친구들은 서로 별명으로 불러서 처음엔 누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한 친구가 옆에서 설명해 줘서 중간부터 같이 웃었어요.
제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는데 영화 볼 때 잘 자는 분이냐고 묻더군요. 다른 얘기도 했을 텐데 그게 남았나 봅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최근에 끝까지 본 영화를 먼저 말했습니다. 줄거리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서연처음엔 다들 조용해서 제가 혼자 너무 떠드나 했어요. 보드게임을 꺼내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더라고요. 규칙 얘기하다 지난번에 누가 뭘 했는지까지 나왔어요.
민준이가 그렇게 열심히 억울해하는 건 처음 봤죠. 저한테 설명은 엄청 친절하게 해 줬는데 게임은 안 봐줬어요. 다음에도 오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 전에 규칙부터 다시 읽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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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축하해 주는 가족을 소개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축하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준비는 잘되냐고 길게 물어보는 분도 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며 짧게 전화를 끊는 분도 있어요. 만나면 저희가 잘 먹는 것을 식탁에 올려 주시는 건 비슷하고요.
결혼 소식을 전한 뒤로는 서로의 안부도 같이 물으세요. 이제 한 사람이 전화해도 두 사람 근황을 말해야 해요. 오늘 함께해 주신 가족과 멀리서 축하해 주신 가족 모두 감사합니다. 신혼집에도 놀러 오세요. 밥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 볼게요.
19
살면서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민준처음 맡은 앱 기능이 출시됐을 때요. 당일에는 오류만 확인하느라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에 제가 고친 부분이 편해졌다는 사용자 의견을 봤어요. 그때 좀 좋았습니다.
캡처해서 서연이한테 보냈더니 저녁에 케이크를 사 왔습니다. 제가 뭘 했는지 길게 설명할 준비를 했는데 이미 알겠다고 하더군요. 케이크 먹으면서 조금 더 설명했습니다.
서연처음부터 끝까지 맡은 책을 서점에서 봤을 때요. 바로 집으면 너무 티 날 것 같아서 옆 책부터 구경했어요. 아무도 저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요.
뒤쪽에 작게 적힌 제 이름을 찍어서 민준이한테 보냈더니 퇴근하고 왔어요. 집에 있다고 했는데도 한 권 사더라고요. 저는 그 옆에서 삐뚤어진 띠지를 고쳐 놨어요. 퇴근했는데 또 책을 만지고 있었네요.
20
지금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민준첫 회사 선배요. 회의가 끝나면 아까 하려던 말이 있냐고 따로 물어봐 줬습니다. 저는 생각을 다 정리해야 말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말하면서 정리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는 확신이 없어도 일단 말해 봅니다. 집을 고를 때도 서연이한테 헷갈리는 점부터 얘기했어요. 말하고 나니 제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결정까지 빨라진 건 아닙니다.
서연어릴 때 제가 쓴 이야기를 읽어 주던 선생님이요. 재미있다고만 하지 않고 이 인물은 왜 갑자기 집에 갔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그때 제가 쓰기 귀찮아져서 집에 보낸 거였거든요.
제 글을 진짜 읽어 주시는 게 좋아서 다음 이야기도 가져갔어요. 지금 원고 읽을 때도 가끔 그 질문이 생각나요. 민준이는 저녁 메뉴 물어볼 때까지 그렇게 꼼꼼하게 따질 필요는 없대요.
21
상대 때문에 한참 웃었던 적이 있나요?
민준서연이가 포르투갈 식당에서 쓸 말을 연습하던 때요. 번역기를 보고 진지하게 읽더니 뜻을 다시 확인하고 혼자 웃었습니다. 음식이 맛있다고 하려다 자기가 맛있다고 한 모양이었어요.
한참 놀렸습니다. 그러고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한번 해 보라길래 못 했어요. 일단 서연이가 주문하고 저는 옆에 있기로 했습니다.
서연신혼집에서 냉장고 자리를 재던 날이요. 민준이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여기서는 자기가 살찌면 안 되겠대요. 냉장고가 들어갈지 보는 줄 알았는데 자기 지나갈 공간을 재고 있었어요.
너무 진지해서 더 웃겼죠. 제가 웃는데도 줄자는 안 놓더라고요. 평소에 준비해서 하는 농담보다 그 말이 훨씬 웃겼어요. 정작 냉장고 자리는 그날 못 정했고요.
22
신랑을 소개합니다
민준이는 앱을 기획해요. 처음 보면 조용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친해지면 엉뚱한 말을 아주 진지하게 해요. 제가 몇 주 전에 한 얘기도 갑자기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고요.
배고프면 말이 더 없어지고, 설거지는 싱크대까지 닦아야 끝나요. 오늘 표정이 굳어 있어도 기분이 나쁜 건 아닐 거예요. 긴장하면 원래 그래요. 밥 먹고 나면 얘기하기 좀 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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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를 소개합니다
서연이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남의 문장에서 어색한 곳을 잘 찾습니다. 제 짧은 답장에서도 뭔가를 찾아내서 중요한 얘기는 전화로 해요. 처음 보는 자리에서는 조용한데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친구들 일을 잘 기억하고 먼저 연락합니다. 길도 한번 가면 기억하고요. 저는 둘 다 자주 까먹어서 도움을 받습니다. 식당 메뉴는 끝까지 읽는데, 주문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24
두 사람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민준은 앱을 기획하고, 서연은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요. 퇴근하고도 서로 화면과 문장을 보여줘요. 잠깐만 봐 달라고 시작하는데, 잠깐으로 끝날지는 봐야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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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좋아하는 음식과 장소는?
민준은 돈가스와 동네 산책길, 서연은 떡볶이와 서점을 좋아해요. 둘 다 좋아하는 건 맛있는 밥집이에요. 가 보고 싶은 곳은 계속 저장하는데, 가는 곳은 자주 겹쳐요.
26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2022년 봄, 친구 소개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둘 다 별생각 없이 나갔던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해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까지 먹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더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어요. 소개해 준 친구는 저희가 결혼한다고 하니 자기가 제일 큰일을 했다며 아직도 생색을 냅니다. 오늘도 식장 어딘가에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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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은 어디인가요?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나요?
신혼집은 서울 성북구에 마련했습니다. 신혼여행은 포르투갈로 열흘 다녀올 예정이에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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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둘 다 먹는 걸 좋아해서 메뉴 고를 때만큼은 의견이 잘 맞아요. 요즘은 집에서 같이 요리도 합니다. 설거지는 주로 제가 합니다.
29
사진 한 장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
2022년 여름, 처음 같이 바다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휴대폰 타이머를 켰는데 민준이 늦게 뛰어왔고, 서연은 그걸 보다가 웃었어요. 둘 다 흔들렸고 수평선도 기울었어요.
몇 번 더 찍어서 멀쩡한 사진도 있는데 자주 보는 건 첫 번째예요. 민준은 뛰어오는 중이었고 서연은 카메라를 안 봤다는 게 그대로 보여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날 신발에서 모래를 털던 것까지 생각나요. 꽤 오래 나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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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짜들
2022.04.16 첫 만남
2022.05.07 연애 시작
2026.05.16 강릉에서 프러포즈
2026.10.24 우리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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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민준2036년에도 주말에는 제가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내릴 것 같습니다. 서연이가 일어나면 오늘 뭐 먹을지 물어보겠죠. 답은 바로 안 나올 겁니다.
지금처럼 저녁 먹으면서 회사 얘기도 할 것 같고요. 서연이가 말하는 사람 중에 제가 아는 이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 머리숱도 좀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써 놓는다고 되는 건 아니겠지만요.
서연여행 다녀오면서 산 자석이 냉장고에 많이 붙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거기서 뭘 먹었는지 기억하고, 민준이는 숙소 옆에 마트가 있었는지 기억하겠죠. 둘이 얘기해야 여행 하나가 제대로 나와요.
그때도 저는 책 얘기하고 민준이는 새로 알게 된 걸 설명할 것 같아요. 저는 다 알아들었다고 하고, 민준이는 조금만 더 들으라고 하고요. 지금 쓰다 보니 10년 뒤 얘기가 맞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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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만의 규칙을 하나 만든다면?
민준자고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깨우지 않기. 먼저 밥 먹을 거면 두 사람 몫 준비하기. 결혼 준비한다고 주말에도 일찍 일어났더니 늦잠부터 자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일어나서 청소기를 돌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이 페이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제 규칙이니까 끄겠습니다. 설거지도 생각보다 시끄러우니 그냥 밥이나 먹고 있어야겠어요.
서연하루에 한 끼는 휴대폰 내려놓고 같이 먹기요. 직접 요리 안 해도 되고, 사 온 김밥이어도 좋아요. 밥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얘기 정도는 하고 싶어요.
너무 피곤한 날은 말없이 먹어도 되고요. 제가 중간에 식당 후기 찾기 시작하면 말려주세요. 지금 먹는 것도 안 끝났는데 다음에 먹을 걸 보고 있더라고요. 민준이보다 제가 먼저 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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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상대와 꼭 함께하고 싶은 일은?
민준포르투갈에서 하루는 예약 없이 돌아다녀 보고 싶습니다. 늦게 일어나서 밥 먹고, 걷다가 괜찮은 데 있으면 들어가고요. 돌아오는 길은 서연이가 찾아줄 겁니다.
여행 다녀와서는 집 근처 단골집을 만들고 싶어요. 후보는 몇 군데 있습니다. 서연이가 메뉴를 다 읽는 동안 저는 테이블이 흔들리는지 보면 됩니다.
서연포르투갈부터 짧게 여행 일기를 써 보고 싶어요. 날짜랑 먹은 것, 웃겼던 말 하나씩만요. 영수증도 몇 장 붙이고요. 길게 쓰겠다고 하면 둘 다 미룰 것 같아요.
민준이는 아마 비용 적는 칸도 만들자고 할 거예요. 그건 본인이 쓰라고 하려고요. 저는 먹은 게 맛있었다고 쓰고, 옆에는 얼마였는지가 적히겠죠. 나중에 다시 가려면 둘 다 필요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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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민준구두부터 벗겠습니다. 그러고 서연이한테 배고프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결혼식 날은 긴장해서 못 먹는다는데 저는 긴장이 풀리면 배가 고픕니다.
편한 옷 입고 밥 먹으면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고 싶어요. 서연이는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을 보여주겠죠. 영화 때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끝까지 봐야 합니다. 졸리면 자세부터 바꾸겠습니다.
서연머리에 꽂힌 핀 빼고 세수하고 싶어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으면 그때 좀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정말 끝났네, 우리 결혼했네 하면서요.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도 같이 볼래요. 제가 못 본 민준이 표정이 궁금하거든요. 민준이는 그때 밥부터 먹자고 할 것 같아요. 밥 먹으면서 보면 되죠. 제가 사진 고르는 동안 먼저 다 먹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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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잘 모르는 분께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민준"아는 사람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요. 얼마 전에는 여행 가서 들른 식당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는 게 신기하고, 가끔은 부럽기도 해요.
서연‘문제가 생기면 조용히 일단 해보는 사람’이에요. 저는 조립 가구 설명서를 보고 막막했는데 민준이는 벌써 바닥에 부품을 늘어놓고 있었어요. 할 수 있냐고 물으니까 일단 끝까지 읽어보겠대요.
나사를 잘못 끼웠을 때도 큰말 없이 다시 풀더라고요. 다 하고 나서 이 제품은 재조립도 가능하다고 했어요. 제가 옆에서 잘못 끼우는 걸 다 봤는데요. 그래도 끝까지 만들었으니까 인정해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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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분들께
민준바쁘신 와중에 저희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도 계실 텐데, 한 분 한 분 오래 이야기 나누지 못할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오늘 맛있는 식사 하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잘 살겠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연오늘 와주신 분들 중에는 제 어릴 때 모습을 아는 분도 있고, 퇴근하고 제 회사 얘기를 들어주던 친구도 있을 거예요. 민준이를 통해 알게 된 분들도 계시고요. 다 같이 만나는 건 저도 처음이라 좀 신기해요.
식장에서는 정신없어서 평소보다 말을 못 할 수도 있어요. 원래 조용한 사람이 된 건 아니니까 놀라지 마세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밥 맛있게 드시고, 사진 찍으실 때 저도 꼭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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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10년 뒤에 다시 읽을 우리에게
민준2036년의 우리에게. 지금 집에는 아직 안 연 상자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만 사자고 했는데 계속 택배가 옵니다. 그때는 다 정리했겠죠. 이 상자까지 그대로 있지는 않겠죠.
이 책에 쓴 걸 얼마나 지켰는지 한번 봅시다. 자는 사람 안 깨우기는 제가 쓴 겁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할 것 같아서 다시 적습니다. 혼자 읽고 있으면 옆 사람도 불러요.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데가 있을 겁니다.
서연2036년의 우리, 잘 지내요? 지금은 식탁 크기 하나 고르는 데도 오래 걸려요. 민준이는 줄자를 가져오고 저는 사진을 찾아요. 그러다 배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고요.
이 책을 읽다가 제가 그렇게 말했냐고 따지고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끝까지 읽고 얘기해요. 틀린 데만 고치지 말고 요즘 얘기도 옆에 좀 써 주세요. 그때도 메뉴 고르는 데 오래 걸리는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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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상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민준‘오늘 잘했어’요. 순서를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있는데, 막상 들어가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 헷갈릴 것 같습니다. 좀 틀려도 끝나면 잘했다고 해 줬으면 해요. 틀린 건 저도 알 겁니다.
집에 갈 때는 ‘우리 집 가자’는 말도 듣고 싶어요. 이제 각자 집에 안 가도 되니까요. 그전에 뭐 먹을지도 정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골라 보겠습니다.
서연"오늘 진짜 예쁘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평소에는 제가 뭐 입어도 다 예쁘다고 해서 사실 별로 믿음이 안 갑니다. 그래도 결혼식 날만큼은 진심을 담아서 한 번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눈도 마주치고요.